이번에 읽은 책은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 독서를 마친 후의 감정이 아직도 마음 안에 생생하게 퍼져 있다. 읽는 내내 나는 담이와 이모, 그리고 구 사이의 관계를 천천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 "담이는 왜 그렇게까지 구를 기다렸을까?"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누군가를 기다릴 수 있을까. 외도하고, 도망치듯 군대를 간 사람을 그렇게 오랫동안 애타게. 그런데 곱씹다보니 담이가 구를 그렇게 맹목적으로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이모의 존재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담이는 이모에게서 헌신적인 사랑을 받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비로소 존재를 알게 된 담이. 출가까지 한 이모는 담이를 알게 되자 모든 걸 내려놓고 아이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담이라는 인물이 누군가를 그렇게까지 기다릴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모가 주었던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기인했을지도 모르겠다.
📌 "담이와 구, 그리고 진짜 주인공은?"
처음엔 담이와 구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이렇게 느꼈다. 진짜 주인공은 이모와 담이. 그 둘 사이에 오간 말들, 끝내 건네지 못한 말들, 그리고 이모의 마지막 장면과 마침내 구를 만났을 때 터져나오는 감정들이 내 마음을 덜컥 무너뜨렸다.
"구를 보는 순간에야 이모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이 대목은 진짜 울컥했다. 담이가 이모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이모를 보내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절절히 느껴졌다. 그럼에도 담이는 결국 보내준다. 아주 가지는 마, 자주 돌아봐달라고, 애원하듯 말을 건넨다. 그 장면을 상상만 해도 마음 한 켠이 싸해진다.
📌 구와 담이라는 이름의 의미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는 또 하나의 생각은, 이름에 담긴 상징. '구'는 구처럼 둥글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존재 같다. 사랑하지만, 외부의 압력 [선생님의 눈총, 부모의 질책, 노마의 죽음] 앞에서 담이를 저버리고 멀어진다. 말 그대로 이리저리 떠밀리는 '구'다.
반면에 '담'은 담벼락처럼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는 존재다. 구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는 사람. 처음엔 순정이라 생각했지만 곧 담이의 인내가 단순한 순정을 넘어선 절실함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 총평
『구의 증명』은 구와 담의 사랑 이야기인 줄 알고 가볍게 펼쳤다가, 묵직한 돌덩이를 삼킨 기분으로 덮게 되는 책이었다. 그리고 가장 슬펐던 건, 내가 담이라면 이토록 오래 기다릴 수 있을까? 아니,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하는 질문이었다. 누군가를 기다릴 수 있는 용기는, 누군가에게 사랑받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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