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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걸어서 서울에서 강릉까지 – 2025 국토횡단 회고 (실패)

by pin9___9 2025.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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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발 – 서울에서 강릉으로

연휴 첫날, 서울에서 강릉까지 5일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길 위에선 오직 발자국만이 나를 증명해줄 것 같았다.
비록 단순한 ‘도전’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내게 이건 조금 더 큰 의미였다.
달리기와 걷기를 통해 스스로를 증명해온 지난 몇 달의 시간들
그 연장선 위에서, 이번 국토종주는 하나의 확인이었다.
“나는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첫날은 완벽했다. 체력도, 날씨도, 마음도.
오히려 너무 완벽해서, 나는 그 완벽함에 방심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그날의 과신이 모든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2. 무너짐 – 오른발, 그리고 왼발

첫날의 마지막 즈음, 오른쪽 발목에 통증이 느껴졌다.
‘괜찮겠지’라며 약을 먹고, 찜질을 하고, 다시 걸었다.
다음 날엔 조금 더 괜찮겠지 믿으면서.
하지만 ‘조금 더’가 아니라 ‘더 악화된’ 하루가 찾아왔다.

둘째 날, 오른쪽 발목에 이어 왼쪽 발목도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걸음 하나하나가 고통이었고, 내 몸은 이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신호를 무시했다.
그냥, 포기하기 싫었으니까.

결국 셋째 날 오전,
도저히 발을 디딜 수 없을 만큼 부어버린 양쪽 발목을 보고
나는 인정해야 했다.
‘이번엔 여기까지구나.’


3. 포기 – 그리고 병원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창밖을 봤다.
그토록 걸어오던 도로가, 창문 밖으로 스쳐 지나갔다.
걷던 길을 타고 지나간다는 게 그렇게 서글픈 일일 줄이야.

친구는 계속 걸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동안은 연락이 올 때마다 미안했다.
“발목만 아니었다면…”
그 말이 입 안에서 몇 번이고 맴돌았다.

하지만 이번 달 말, 풀마라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멈추지 않았다면,
아마 그 무대조차 잃었을 거다.
포기는 패배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4. 돌아보며 – 이번 여행이 남긴 것들

다시 생각해보면, 이번 여정은 ‘실패’가 아니다.
몸은 멈췄지만, 배운 건 너무 많았다.

  • 신발은 무엇보다 편해야 한다.
  • 첫날엔 체력이 남더라도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 짐은 가볍게, 필요 최소한으로.
  • 아프면 참지 말고 휴식이 곧 전략이다.
  •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에 집착하지 말자.

시계를 보며 걷던 나는
풍경을 보지 못했고
길을 즐기지 못했다.
시간을 쫓는 여행은 결국 여행이 아니었다.


5. 다시 – 복수를 꿈꾸며

이번엔 강릉이었지만, 다음엔 부산이다.
좀 더 긴, 좀 더 거친 길로 다시 간다.
이번엔 걷는 법을 알았고, 멈추는 법도 배웠다.
그래서 다음엔 더 멀리 갈 수 있을 거다.

발목은 멈췄지만,
마음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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