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춘천으로 향하는 첫 풀코스 도전의 날!!
단 한 번도 뛰어본 적 없는 거리 42.195km...
긴장보다도 “오늘은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이 더 컸다.
0. Ready Shot

전날 밤 내일의 42.195km를 생각하며 준비물을 하나씩 꺼냈다.
두려움보다 설렘이 더 컸다.
잠자리에 들면서도 머릿속엔 오직 한 문장뿐.
“내일.. 끝까지 달리자.”
1. 새벽의 출발

시청역 2번 출구 앞.
아직 어두운 새벽인데도 러너들이 모여 있었다.
같은 목적을 향한 사람들의 에너지가 공기를 데우고 있었다.
역시 메이저 대회는 다르다 —
규모, 열기, 그리고 분위기까지.

나는 첫 풀코스 도전이라 E조로 배정받았다.
출발 게이트 앞에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될 때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5, 4, 3, 2, 1”
그 순간, 도파민이 폭발했다.
2. 첫 8km – 너무 즐거웠던 초반

처음 8km까지는 그저 즐거웠다.
몸은 가볍고 호흡도 완벽했다.
이제 진짜 ‘러너’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국토횡단 때 다쳤던 장경인대 염증이
8km 지점부터 다시 고개를 들었다.
왼쪽 발목이 점점 타들어가는 듯한 통증.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3. 신매대교를 넘으며 – 응원과 에너지

20km 지점 신매대교.
응원 소리가 터져나왔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이름을 외치고 손을 흔들어줬다.
그 응원 덕분에 신매대교 구간은
기억이 희미할 정도로 몰입해서 달렸다.
고통보다 감동이 더 컸던 순간이었다.
4. 23km – 쥐의 시작

23km부터 다리에 쥐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왼쪽 발목의 통증보다도 더 괴로웠다.
500m 달리고, 멈춰서 쥐를 풀고, 다시 달리고.
그 반복이었다.
기록은 이제 의미가 없었다.
“완주만 하자.”
그 생각 하나로 버텼다.
5. 30km 이후 – 걷지 않으려는 싸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다.
“아무리 달리는 속도가 떨어지더라도, 걸을 수는 없다.
그것이 내 규칙이다. 만약 내가 정한 그 규칙을 단 한 번이라도 깨버린다면
앞으로 더 많은 규칙들을 깨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 레이스를 완주하기는 아마 어려워질 것이다.
어제의 자신을 아주 조금이라도 넘어서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하다.
장거리 달리기에서 이겨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과거의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나는 결국 걸었다.
아니, 주저앉았다.
쥐가 올라와서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쥐가 가라앉으면 다시 일어나 뛰었다.
멈췄다가, 다시 뛰고, 또 멈추고.
그게 내 30km 이후의 레이스였다.
6. 37km – 싸이의 ‘아버지’

37km 즈음, 이어폰에서 싸이의 아버지가 흘러나왔다.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그 가사에 갑자기 벅차올랐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몸에 수분이 없었다.
울 수도 없었다.
그저 가슴 깊숙이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이게 마라톤의 감정이구나 싶었다.
7. 40km – 이어폰 배터리 종료

40km 지점에서 이어폰 배터리가 나갔다.
음악도, 응원도, 아무것도 없이
내 호흡 소리만 들렸다.
“두 번의 들숨, 두 번의 날숨.”
그 리듬에 맞춰 다리를 움직였다.
근육은 파도처럼 쥐가 올라오려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8. 41km – 시간은 빠르게, 거리는 멀게

41km를 지나자 시간이 너무 빨리 갔다.
하지만 거리는 전혀 줄지 않았다.
“이러다 DNF(기권) 되는 거 아니야?”
그 불안이 머리를 스쳤다.
그때 눈앞에 ‘마지막 1km’ 표지판이 보였다.
9. 마지막 1km – 정신력으로 버틴 1km

그 순간, 모든 생각이 사라졌다.
쥐가 올라와도 멈추지 않았다.
‘1km 뛰고 죽자.’
그 마음 하나로 달렸다.
고통이 사라질 만큼 집중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승선.
10. 완주, 그리고 5시간 3분

기록은 5시간 3분 33초.
수치만 보면 아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값졌다.
8km부터 염증이 재발하고도 끝까지 버텼다는 것,
그게 내게는 기적이었다.
정신력으로 버틴 42.195km.
이건 단순한 완주가 아니라, 내 자신과의 화해였다.
11. 다음을 향해 – 서브4를 꿈꾸며

이번 풀코스는 ‘극한의 경험’이었고,
내 한계를 다시 새로 썼던 하루였다.
이제 목표는 명확하다.
“내년, Sub4.”
재활을 잘 마치고
더 강해진 몸으로 다시 출발선에 설 것이다.
오늘의 고통은 내일의 나를 만든다.
🏅 2025 춘천마라톤 풀코스 완주
기록: 5시간 3분
다음 목표: 2026 풀마라톤 Su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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